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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JOURNAL5월호에 실린 원장님 컬럼입니다
관리자  jorva7@chol.com 03.05.10
MDJOURNAL5월호에 실린 원장님 컬럼입니다
p52에서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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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에 대한 작은생각

정태범(인천늘밝은안과 원장)


얼마전 빨간 봉투의 카드를 한 장 받았다. 이메일이 일상화된 이후로는 서면으로 편지나 카드를 주고 받은지가 꽤 되었기에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봉투를 여는 순간, 두근거림은 배로 커졌다. 빨간 모자의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푸 사슴이 짠뜩 선물을 싣고는 툭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온지천이 갖가지 꽃들로 가득한 봄에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삭막한 기계와 소독약품 냄새로 가득하던 진료실에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구세군의 정겨운 종소리도 들렸다. 곤고하던 봄 오후가 정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지긋이 눈을 감고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개월수로 따지자면 불과 몇 달전의 일이건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가득하던 나눔의 욕구와 갖가지 계획들이 마치 몇 년전 추억으로 느껴진다. 당장 주머니에 사탕이라도 가득 넣어서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이라도 불러모아야 할것같다. 나눔은 크리스마스의 전유물일까.

몇년전 미국 로체스터의 메이요 병원에서 연수할때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미국내 순위 1-2위를 자랑하는 메이요 병원은 명성에 걸맞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환자들로 늘상 하나의 다인종세계를 방불케 한다. 특히나 노인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노인과 환자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문, 휠체어가 다니기 쉬운 턱없는 보도, 곳곳에 있는 엘리베이터, 그리고 수많은 기도처.

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독특했던 점은 병원이나 세계각지에서 몰려드는 환자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항상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중에서는 메이요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은퇴후, 병원 환자들을 위해 커피를 타기도 하고, 외국인 환자들을 위한 언어교육 봉사를 하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노교수는 환자의 아이들을 위해 책읽어 주는 봉사를 하고 계셨다. 이들중의 대부분은 그 수익금을 환자들을 위해 돌린다. 노년이 아름다워 보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보면 미국에서의 봉사나 기부행위는 그다지 특별한 행사(?)로 취급되어지지는 않았던 듯 싶다. 물론 미국 자체내에서는 참여율을 더욱더 높여야 한다고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기부나 봉사 참여율이 턱없이 적어 어려움을 많이 겪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볼때 그것은 배부른 자의 투정이나 다름 아니다. 미국은 전 국민의 98%가 어떤 형태로든 기부나 봉사라는 개념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주변 사람의 기부행위에 수선을 떤다는 것은 어찌보면 촌스럽다. 미국에서의 기부나 봉사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비지니스 뉴크지에서 만들어낸 신조어 ‘기부세대’는 그 내면에 담긴 의도야 어떻든간에 현 미국민의 기부에 대한 사고를 대변하는 말임은 틀림없다.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미국 철강왕이었던 카네기는 재산의 사회환원 일환으로 카네기 재단을 세웠다. 그후 그것은 재벌들의 전통처럼 되어버려, 록펠러재단, 포드재단, 빌게이츠 재단등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자본주의로부터 발생하는 갖가지 폐해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굳건하게 미국식 자본주의로 지탱해 나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폐해를 넘어설 수 있는 이러한 나눔의 정신이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나눔이 미덕인 우리사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부문화의 부재나 나눔에 대한 냉담한 현상이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부액 규모가 상승은 하고 있으나 기부문화의 저변은 아직 넓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실 ‘기부’라는 단어는 어떤면에서는 친근하지 않다. 그것은 ‘기부’에 뒤따르는 갖가지 문제들, 기부절차, 기부후 사후관리, 투명성등 어려운 절차들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나눔’에는 친숙하지 않은가. 작게는 ‘품앗이’가 있었고 크게는 국가위기때마다 금모우기 운동 같은 대규모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뿐 우리는 이미 나눔에 익숙해져 있는 민족인지도 모른다. 나눔이 주는 기쁨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나누고 싶어하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깨워보면 어떨까. 친구에게, 가족에게 또는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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